라면의 역사 농심vs삼양 용호상박[우지파동,발전없는 삼양]

일간 베스트 2015. 10. 29. 09:54

한국 라면사에서 절대로 빠질수없는것이 농심과 삼양이지.

 

오늘날의 농심이 압도적인 60%대 시장점유율로 우뚝섰지만,

 

처음부터 농심이 절대강자였던것은 아니었다!

 

한국 최초의라면, 삼양라면이 1963년에 출시되는것으로부터 우리나라 라면역사가 시작한다.

 

일본 묘조라면의 기술제휴로 기술적인 도움을 얻어 삼양라면을 출시한 삼양라면은

 

최초의 시장진입자라는 엄청난 이점을 안고, 특유의 담백하고 부담없는맛으로

 

출시한지 얼마안가 확고하게 국민라면으로 발돋움,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아무도 라면시장의 형성이나 진출을 염두에 두지않고있던시기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던건

 

삼양뿐이었고, 이 독주는 무려 7년간인 1970년까지 이어지게된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라면시장에 삼양을 견제하려는

 

후발주자가 등장하게되는데,

 

 

그게바로 삼양의 운명적 라이벌이었던 농심이다.

 

이 시기부터 라면시장의 절대왕좌에 군림하고있던 삼양을 끌어내리기위해

 

농심이 신제품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내놓는 시도를 하지만

 

 

이미 선두주자로 국민라면인 삼양라면을 갖고있던 삼양의 아성은 쉽게무너뜨릴수없었다.

 

여러해동안 완전독점상태로 라면시장을 석권하고있었던 삼양의 브랜드적 인지도나 제품의 질적수준은 압도적이었고,

 

 

 

1970년대 라면시장의 점유율은  삼양 75.8% vs 농심24.2% 로 

 

 단 2개회사만이 대립중인 시장구도라고하기엔 말도안되는 엄청난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있었다.

 

그나마 24%의 점유율이라도 뽑아낼수있었던것은 삼양라면을 꺾기위해

 

농심이 '라면덤핑'공세로, 저가라면을 미친듯이 찍어내는 물량공세로 싼맛에 먹는 라면을 보급해서 이끌어낸결과였었고,

 

 

이시기의 농심은 마치 짱개같은 존재였다. 질로 승부가안되니까 양으로 승부를 봤지만

 

아무리 저가제품으로 공세를 펼쳐도 사람들은 삼양라면에 계속해서 열광했다.

 

 

 

 

이렇게 농심은 70년대 내내 기를쓰고 삼양에 덤벼도 깨지기만하는 최악의시기를 보냈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1982년, 농심에서는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을 출시하였고,

 

이 두제품이 히트를 치면서 삼양의 움직이지않던 부동의점유율을 갉아먹기시작한다.

 

 

 

 

게다가 다음해인 1983년, 농심은 쉬지않고 신제품을 내놓는데 그것이 바로 안성탕면이었다!

 

너구리와 육개장에이어서 바로 다음해에 내놓은 안성탕면은 그야말로 연타석홈런과같은 쾌거였다.

 

농심이 계속해서 공격적인 신제품개발에 나서고있을때 , 같은 시기의 농심이 '저가형,제품군 다양화 노선' 을 수립하고있던것과

 

완전히 반대로, 삼양은 차별화된 '라면의 고급화 노선'을 수립하고 있었고,  간판제품인 '삼양라면'의 개량이나

 

라인업을 늘리지않고 적은종류의 제품에 집중해서 질적인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한마디로 농심이 독기를 품고 미친듯이 신제품폭격을 때리려고 작정하고있는데

 

삼양은 삼양라면만 있으면 된다는식의 안일한 태도였던것이었다.

 

 

 

라면시장은  삼양-농심-한국야쿠르트 라는 3사 체제로 서서히 혼전이 되기시작한다.

 

이시기의 야쿠르트또한 덤핑공세로 저가라면을 보급하면서 삼양과 농심 양쪽의 점유율을 조금씩 잠식한다.

 

 

 

그렇게 삼양이 라면의 고급화라는 노선을 표방하며 농심,야쿠르트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없이

 

신제품개발이나 라인업다양화에 신경쓰지않고 안주하고있을때..

 

농심은 또다시 다음해에 어마어마한 괴물을 내놓는다.


 

 

 

 

 

 

1984년, 농심은 최초의 짜장라면인 '짜파게티'를 출시한다.

 

84년도 당시에 짜파게티라는 신제품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했을정도로

 

어마어마한 흥행몰이를 하기시작하고, 

 

너구리,육개장,안성탕면,짜파게티 라는 오늘날 라면시장의 상위권을 차지하고있는

 

사기적인 라인업을 무려 1984년도에 농심은 완성한것이었다.

 


 

 

 

라면시장구도는 삼양-농심-야쿠르트-청보  4개사 경쟁으로 크게 요동치기시작했고,

 

 

이 시기의 삼양과 농심의 결정적인 차이는,

 

삼양은 간판제품인 '삼양라면'만 믿고 라인업을 다양화하지않았기때문에

 

같은 빨간국물장르에서 '저가라면공세'를 펼치는 야쿠르트와 청보식품의 공세에 서서히 타격을 입기시작했었고,

 

 

반면에 농심은 너구리,짜파게티와 같이 타사제품들과 차별화된 라인업을 확보해두고있었던덕에

 

오히려 청보와 야쿠르트측에 점유율을 크게 뺏기지않고, 가격경쟁에서도 밀리지않고 버티면서

 

삼양이 후발주자들의 협공에 무너지는사이에 점유율을 크게 확장하기 시작한다.


농심의 엄청난 공격적인 신제품공세와 후발주자들의 협공에 삼양은 점유율에 큰 타격을 입고,

 

1985년 6월달에는 농심이 드디어 최초로 시장점유율 42%에 등극하게된다.

 

삼양42% vs 농심42% vs 야쿠르트10% vs 청보6% 로

 

드디어 삼양과 점유율을 동률로 따라잡는 쾌거를 이뤄낸순간이었다.

 

 

하지만 농심은 삼양을 '따라잡는것'만으로 만족할수없었다.

 

삼양이 정신을 못차리고있을때 농심은 신제품개발을 멈추지않고

 

이 시기에 승부수를 띄우기로 작정한다.

 

 

 

 

 

다음해인 1986년, 농심은 마침내 한국인들에게 최적화된 화끈한 매운맛을 가진 신라면을 출시한것이었다!

 

그동안 간판작품인 '삼양라면'은 너무 오랜세월 지속된판매로 서서히 국민들이 싫증을 느끼고있던차였고,

 

신라면의 얼큰하고 화끈한 매운맛은 삼양라면에 질려가고있던 한국인들의 입맛을 완전히 휘어잡게된다.

 

이 시기부터 농심은 삼양을 제끼고 업계 1위로 등극하게되었고,


신라면을 출시한지 2년뒤에도 쉬지않고 농심은 또다시 신제품인 '사리곰탕면'까지 출시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모두 판매되고있는 유명,히트작 라인업을 완벽하게 완성하기에 이른다.

 

 

너구리-육개장-안성탕면-짜파게티-신라면-사리곰탕  이라는 막강한 라인업을 내세운

 

농심은 사리곰탕을 출시한 당해인 1988년도에 드디어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는 50.6%를 달성하면서,

 

과반수를 넘어서는 라면공룡으로 약진하게된다.

 

 

농심은 그 유명한 우지파동이 터지기 이전에 다양한 제품군을 바탕으로

 

'순수한 실력'만으로 후발주자들의 공세까지 견뎌내가며

 

막대한 이점을 안고 시작했던 절대강자인 삼양을 압도했던것이다.


이후 1989년에 우지파동이 터지면서 삼양이 몰락한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우지파동은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밀려서 그로기상태가되가던 삼양에게 쐐기를 꽂았다고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흔히들 알고있는 1위 삼양이 우지파동때문에 2위농심에게 졌다 는 전혀 사실과 다른것이다!

 

우지파동이 터지기전에도 농심은 이미 업계1위를 실력으로 따냈었다.

 

 

 

 

 

 

 

 1989년 이전부터 농심에게 업계1위자리를 내주고 힘을 잃어가던 삼양에게 우지파동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는것은 사실이고, 우지파동으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은상태로

 

삼양은 후발주자인 야구르트,빙그레,오뚜기 3사의 협공에 휘말리면서

 

삼양의 점유율은 15.1%까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된다.

 

하지만 이 시기의 삼양의 몰락은 단순히 이미지손상만을 원인으로 보기엔 무리가있다.

 

농심과 달리 적극적인 신제품런칭에 힘쓰지않았던것이 80년대 삼양의 경쟁력약화를 불러왔고,

 

우지파동이후에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에 무너지는 삼양을  삼양 스스로가 자초했던것이다.

 

이후 사실 삼양이 수입해온 우지의 원산지인  미국에선 내장이나 사골 등을 먹지 않으므로 우지를 비식용, 즉 공업용으로 구분하였다.

 

다만 한국에서는 내장과 사골도 당연하게 소비되므로 한국 기준에서 우지는 공업용이 아니다

 

당시 삼양라면이 이용한 기름이 그때 분류상 공업용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해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 기준에서나 공업용이지 한국에서는 엄연한 식용이다.

 

익명의 투서의 제보는 바로 한마디로 미국의 관점을 가져가다 한국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억지로 재해석하여,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워버린 것

 

삼양은 독보적인 강자였고, 농심은 힘없는 후발주자였었지만

 

결국 집념의 공격적신제품개발로 80년대에 역전해냈다.

 

 

결국 잘나간다고해서 안주하는 기업의 미래는 삼양처럼 몰락뿐인것이다 ㅇㅇ

 

▼ 그리고 오늘날의 농심.jpg



 

 

 

 

 

 

 

 

 

 

 

 

 

 

이렇게 삼양의 안일한 방식으로 삼양은 나락으로 떨어졌다카더라..